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수상" 우리들의 블루스: 구본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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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16회 작성일 24-01-10 10:36본문
우리들의 블루스
“센터장님 11월 24일에 돌봄터 행사 있어요? 구청장님도 오신다는데 참석 가능하시죠?” 돌봄터 시설장이 결제 서류와 함께 행사 전단지를 보여주었다
“네? ‘우리들의 블루스’ 금요일이네요? 그날 부산에 치매학회 가기로 했는데….”
“그래요? 어떡하지요? 심사위원도 맡아 주셔야 하는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뭐 참석해야지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하고 부랴부랴 학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사전등록 취소를 부탁하고 예약해놓은 기차표도 취소하였다.
2020년 가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병원 기획팀 부팀장이 관내 치매돌봄터의 위탁운영 공고가 나왔으니 응모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였다. 나는 수도권 광역시 2차대학병원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지만 개원한지 얼마 되지않아 전공의도 없이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면서 과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외부 일을 맡는 것이 망설여 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치매환자를 주로 보는 의사의 입장에서 실제 환자의 돌봄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경험도 쌓을 겸해서 응모를 하였는데 위탁운영기관으로 선정 되었고 2021년부터 비상임 센터장으로 주 1회 방문하여 돌봄터 운영보고,서류결제, 회의, 직원교육 등을 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 치매돌봄터를 위탁하면서 구청으로부터 돌봄터를 주야간 돌봄터로 확대 운영하는 제안을 받아서 현재는 치매전담형 주야간돌봄터로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돌봄터 위탁을 받는 시점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여러가지 대면 접촉에 제한이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돌봄터가 폐쇄되는 일은 피해야 했기에 돌봄터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활동 중 외부로 나가는 행사나 센터 직원을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은 통제가 불가피 하였다. 돌봄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전부터 외부 강사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실시하던 다양한 인지 중재 프로그램도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실시하였다. 당연히 관내 유치원, 초등학생들의 현장 체험학습, 방학 중에 이루어지는 중고교생의 봉사활동, 간호학과 학생들의 지역사회 실습도 모두 잠정 폐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봄 가을의 가족나들이, 그리고 연말에 실시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송년회 프로그램도 모두 센터 내의 직원들만 참여하는 형태로 축소 운영하였다. 이렇게 운영을 하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센터가 폐쇄되는 일은 막았지만 센터의 활기는 예전 같지가 않았다.
금년 들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승이 약화되면서 대응 수위도 낮아져 기존의 외부활동을 조금씩 재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 감염증으로 기존에 구축되었던 자원봉사활동 및 외부활동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훼손되어 곧바로 코로나 감염증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었다. 또한 여전히 코로나 감염증이 존재하고 있고 센터의 어르신들은 고령이며 치매 외에도 여러가지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무리하게 활동을 재개하기 보다는 순차적으로 외부 활동을 늘려나가는 것으로 하고 금년을 보냈다. 예를들면 가족과 함께하는 나들이의 경우 외부로 나들이는 나가지만 가족은 참여하지 않고 센터 직원들로 구성하여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연말에 송년회 겸 치매 안심 노래자랑을 기획하게 되었다.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지난 몇 년 간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생긴 고립 감을 덜어주는 의도로 가족과 함께하는 노래자랑을 기획되었고 심사위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노래에 대하여 아는 것도 없고, 더구나 누구를 심사해 본적도 많지 않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것도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참석하기로 하였다.
노래자랑이 시작되기 전 치매환자 보호자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환자분과 같이 있었으면 알아보았을 텐데 보호자 분만 계셔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자 환자분 이름을 대며 하시는 말씀이 2년 전에 치매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약 먹고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였는데, 금년도부터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지고 우울감이 심해져 약물치료와 함께 기억쉼터참여를 권고 받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고 하였다. 환자가 젊어서부터 남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쉼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환자분도 기억쉼터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다양한 인지중재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울 증상과 화를 내는 증상이 많이 완화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보호자 분이 환자가 기억쉼터에 나가는 시간에 조금 휴식을 취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보호자 분과 인사를 나누고 심사위원석에 앉자 다행히 전문노래강사 선생님이 같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주신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어르신들의 차임벨 연주를 시작으로 노래자랑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가족들은 미소를 지으며 함께 노래하였고, 치매환자들은 음악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꺼내어 함께 나누었다. 한 가족은 노래 속에서 치매를 않고 있는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어머니가 예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가사를 잊어 먹어 가족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나도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노래를 불러본 적이 언제 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다른 참석자들도 노래를 들으며 노래 속에 감춰진 각자의 추억들이 다시 살아나는지, 그 순간은 참석자들 모두에게 감동의 순간으로 남았다. 또다른 치매어르신의 딸은 “마이크를 싫어하던 엄마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밝아지기 시작해 이제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하시는 모습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노래 가사에 나오는 소품을 실제로 준비하여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초로기 치매 환자인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해’ 노래를 부르던 남편이 눈물을 터트려 노래를 잇지 못한 모습에 장내는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 무대의 심사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심사 내내 나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부산 학회를 취소하고 노래자랑 심사에 참여한 것은 내가 근래에 내린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에 참석하면 유명 외국연자 의 반쯤 알아듣는 영어강의를 듣고, 늘 만나던 선후배 만나 점심 먹고, 늘 하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겠지만, 이 무대에서 경험한 영혼이 정화되는 감동은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 이루어진 인위적 사회적 거리 두기는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에 악영향을 미치고 치매 가족의 부양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꼭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돌봄터에 규칙적으로 나가시던 어르신이 여러가지 이유로 돌봄터 이용이 어려워 질 때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함께 고령화에 따른 비용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나는 노래자랑 심사를 하면서 ‘만일 예산상의 문제로 돌봄터가 축소되거나 폐쇄 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쓸데없는 걱정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의 정답은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고, 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이정도도 모르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노래자랑에서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노래자랑을 통하여 나의 영혼이 치료받았다는 깊은 가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수상소감 : 임상 현장에서 인생의 향기를 전하는 수필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한미 수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보낸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다시 보니 여기저기에 고쳐 써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었고 과분한 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수필을 기고하게 된 것은 평소 병원에서 급성기 환자만 진료하던 제가 치매 돌봄터라는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활동하며 느낀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임상 의사들도 비슷하겠지만 30년 전에 의사가 된 후 저의 인생 경험은 제한된 범위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공중보건의사 편입을 위한 2개월간의 군사 훈련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환자를 진료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공중보건의사로 시골 보건지소에서 지낸 3년이 농촌 경험의 전부였습니다. 당시에는 무료 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때의 경험이 농촌에서 올라오시는 환자분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년간 치매 돌봄터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치매라는 질병을 진료실에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치매 환자에게 치매의 원인 질환을 감별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여 적절한 약제를 처방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 환자나 보호자의 치매 증상에 대한 호소가 있으면 행동 조절 약제를 추가해서 처방하는 정도 입니다. 그래도 초진의 경우는 15분에서 20분 정도 진료를 하지만 재진의 경우는 5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치매 돌봄터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치매를 질병이 아닌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치매돌봄터에 1주일에 한번,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병원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제가 가면 인지중재활동을 하던 치매 어르신이 저를 알아보고 나오셔서 반갑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맞아 주실 때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동안 치매돌봄터에서 느꼈던 색다른 경험이 코로나 판데믹이 끝나고 1년을 마무리하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노래자랑에서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동과 공감을 다른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의 소식을 듣고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가수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 나오는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라는 가사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치매 환자를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닌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되는 사고와 행동의 어려움을 겪는 노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 하는 아이도 있지만 일부는 세칭 중2병이라는 것을 심하게 앓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세월의 흐름에도 인지기능이 크게 손상되지 않는 노화과정을 겪는 어르신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심한 인지기능의 변화를 겪는 어르신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수필을 작성하며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임상 현장의 일상을 다룬 많은 이야기를 전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을 형성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과분한 결과를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러한 기회를 열어주신 청년의사와 한미약품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믿고 진료받는 환자분들께도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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